필가태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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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태교지기
  제    목  뚜벅 뚜벅 걸어온 길
  1967년 6월   충북 청원군  북이면  대길리 2구
                      2남 4녀중 다섯째 막내딸로 출생
                      어린시절은 몸이 허약해서 집밖에 나가지못하고
                      잔병 치례가 잦음
                      남동생과 같이 홍역을 앓다가 늦게 회복되어서
                      걱정끼치고 어릴적 경련으로  밤중에 나를 등에 업고
                      내수, 증평으로 간적이 잦음.                

1971년 7월   * 동네앞 냇가에서 언니 오빠들과 물장구 치다가
                      170 미터 정도 떠내려가서 시장보고 오시던
                  작은 할머니가 구했으나 의식 불명상태로 이틀후 깨어남

1975년 3월   * 대길 초등학교 입학 :  
                    6남매을 둔 엄마는 두살터울이라  다섯째인 난 9살에  입학시키고 남동생은 8살에 입학해서 책이나 학용품  물려 쓰라는 의미라함  

1981년 3월   * 북일면 내수 중학교 입학
                    학급 실장 간부직을 하면서 나의 외향적 성격이
                    조금씩 두드러지기 시작
                    중1은 기억이 가물 /중2(김선희 선생님).
                     중3(안상기 선생님)

1984년 3월   * 청주 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둘째 언니와
                      내덕동에서 자취생활
           9월   * 내덕 육거리부근에서 중학교 친구와 횡단보도
                     건너던중 무면허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100미터
                      끌러가서 허벅지 타박상.

1985년 10월  * 고등학교 2학년 가을
                   청주시 탑동 근교에서 언니랑 자취생활하던 어느날
                   이화 슈퍼마켓 딸 (유치원생) 데려다 주고 오다가 오르막 차로에서 택시 교통사고로 서울 병원(현재 성안길 )으로 이송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중 3일째 코와 입으로 피를 많이 토해냄
병명은 자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른쪽 뇌. 오른쪽 어깨 골절.
오른쪽 팔꿈치, 손, 오른쪽 골반까지 심한 골절과 타박상이라
중환자실에서 1달 가량 집중 치료.
가장 심하게 다친 부위는 뇌, 어깨, 팔꿈치 임.
팔꿈치에 무거운 기계 장치에 오른쪽 머리에서부터 골반까지 심한 골절과 타박상 어깨뼈가 으스러져 깁스을 해야하는데  고등학생이라 가슴 성장문제로 고민하다가 새로운 고정장치(정형외과 김규형 원장).

중환자실에서 하루하루 내 옆에 계시던 사람들이 사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춘기인  나이로 힘들었고, 엄마는 꼼짝없이 누워있는 나를 간병하느랴 복도 나무 의자에서 매일 쪽잠을 주무시는 탓에 엄마 건강이 안좋아지셨는지  철부지인 나는 그런것도 몰라줘서 야속하다고 하심.

1달후 어느정도 호전되어서  4인실 병실로 옮겼지만 팔꿈치나 어깨 골절로  2~3 달 동안 똑바로 누워서 생활 하면서 엄마가 똥,오줌 다 받아주심
3개월후 2인실 병실로 옮기면서 엄마는 시골집으로 가시고 2-3일에 한번씩 병원으로 오심.
5급 장애인 진단을 받았으나 10년동안 동사무소에서 발급 받지 않아 말소.
학교생활을 할수 없었기에 출석일수가 부족해서 학교에서는 긴급회의 열렸고 교장선생님(김정일)과 담임선생님(김상희)의 배려로 3학년으로 올라감
고 3 담임 선생임(봉회근)이라 야간 자율학습은 기본이였지만  
4교시 끝난후 병원으로  통원치료하는 나를 많이 부러워했고,
짝꿍(성정희)은 내 몸에서 나는 파스냄새에 괴롭다고 토로하면서 잘 챙겨줌.

  * 대학진학은 그저 나의 먼 로망이였다.
막내 남동생은 공부을 운호고 다니면서
전교 1,2등하는 동생이라 마땅히 시골인 우리집에서는 희망같은 존재였고   나이는 2살 터울이지만 학년은 1학년 차이라
엄마는 여자는 시집이나 잘 가면 된다 하면서 몸 건강을 위해서 집에서 휴양하라고 권유하였지만 그래도 나느 대학원서을 쓰고 싶었지만
문고리 잡고 엄마가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남동생도 가르치기
힘든다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대학은 포기함 .

  1987년10월   *고등학교 졸업후  엄마에게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학원비을 지원받고 대학공부을 시작하면서 중간에 공무원시험을 한번 보기로 함.
공무원 시험 원서 제출 하러가는 시골버스를 타고 가던중 버스교통사고  (현재 내수 만남의 광장)    하필이면 난 버스 중간문 내리는 바로 앞좌석에 앉았는데 충주에서 오던 버스가  내자리를 덮치면서 사고가 남)
의식을 차리고 나니 많은 시골아저씨들과 아줌마들은 사람 살려달라고 아우성이였고, 내 머리에는 피가 흐르고 있어서 119 타고 청주병원으로 이송
우연인지 필연인지 택시사고로  다친 부위에 피가 나서 바늘오 꿰맴 .
혼자서 걸어다니면서 병원생활을 할수 있기에  엄마는 며칠에 한번씩 오심.
심한 깊은 우울감 심리에 빠져서 그 이후부터 난 실어증 환자처럼 말을 잃었고  엄마가 오면 고개을 끄덕이던가 했을 뿐.
간호사와 의료진은 벙어리인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매일 정신병동  복도에서 서성이다가 담당 닥터에서 자주 혼남(정신과 김수일 원장)  그저 죽음을 택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지만 자살시도을 할 만큼의 용기는 없었다  
중학교 친구( 이재연)은 매일 병실에 문병오면서 머리감겨주고 말동무가 되어줌
나의 삶에 있어서 교통사고는 불가사의하게 농촌에서 바쁜 9월 10월에 일어났으나 3번째 교통사고로 엄마는 나를 보시자 마자 '이년아 같이 죽자'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엄마을 보며 늘 마음 한구석에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듬.

........................... 다음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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